사람들을 기리는 곳에 생명력이 가득하다.
자연의 온갖 소리와 색이 제주를 채웠다.
사람들이 모여 고이 잠들어 있는 그곳은 이미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눈을 감으니 생명의 소리가 밀려 들어왔다.
눈을 감으면 바다의 푸른 소리가 밀려오고,
귀를 기울이면 숲의 초록빛 결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명이 꺼진 그곳에 새로운 색과 소리로 생명이 피어났다.
슬픔이 묻힌 자리에 어김없이 돋아나는 풀잎들.
제주의 사계는 죽음의 허기를 늘 찬란한 생명력으로 메어왔다.
그리운 이들은 이토록 선명한 채도와 눈부신 소리들로 우리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도 그들에게 따스한 안부를 보내보자, 그들이 지켜낸 제주를 함께 지켜내며.
어느 날 본 돌의 표정
그런 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털어내도 남아 있는 흙 같은
쿰쿰하지만 코가 시원해지는 향기
뒤죽박죽 엉켜있는
살아있는 몸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그저 있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이기도 한
이름이/이야기가 가득한 섬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곳
제주도는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제주도에 삼십년 동안 살면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있는 사람이 만든 제주도 책!
제주인!
4·3을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에서 밀려난 사람으로 나뉜다.
제주에서 4·3을 안다는 것, 역사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누군가의 부재를 알아보는 일이다.
제주의 결, 형상의 언어로 태어나다.
'제주의 결'을 좀 더 알고 싶어 교육 신청했다가 '예술'을 짓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제주의 결은 무엇일까?…"
제주에서 나고 자란 시간이 육십 년도 넘어서 일곱 해.
찬찬히 그리고 눈을 감는다.
'바람', '짠 기', '바당', '동백', '하늘', '곡선', '삶'……,
시간이 갈수록 내 몸에 박힌, 나를 둘러싼 제주의 결이 형상으로 말을 걸어온다.
교육 끝나고 최종 다섯 단어를 뽑았다. 평소 찍어 두었던 사진도 함께 골랐다.
'바람', '삶', '동백', '어머니', '곡선'
'바람'
바람은 잠재우기도 하지만 일으키기도 한다.
바람이 만든 형상은 누구에게는 작품이 되고 누구에게는 견뎌낸 흔적이다.
뿌리는 바다에 두고 몸은 한라산으로 향한 팽나무가 침묵으로 말을 건넨다.
'삶'
돌이 뿌리를 품은 건지 나무가 돌을 품은 건지
삼십 센티 암반 위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이나 나무들이나.
그뿐인가, 돌 많고 바람 많고 외세 침입이 끊임이 없는 섬, 제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삶이 만들어내는 결이 제주의 결이다.
'동백'
수많은 증언은 우리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숨 쉰다.
그때 성산 터진목 그 현장에 있었던 열다섯 살 소녀는 아흔여섯으로 음력 유월에 생신을 맞았다.
'곡선'
제주는 곡선의 땅이다. 오름의 능선, 납작 엎드린 지붕, 밭담, 올레, 해안선,
구불구불한 길, 먼 지평선까지. 심지어 풀도 바람에 몸을 맡겨 곡선으로 누웠다 일어난다.
곡선은 강한 바람 앞에서 꺾이지 않고 휘었다가 다시 일어서는 유연성, 포용,
아름다움, 공존, 겸손, 자연의 질서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특히 제주가 살아온 방식이다.
'어머니'
제주는 아름다운 풍경만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방의 바다로 둘러싸인 섬, 척박한 섬에서 손이 괭이가 되도록 땅을 일구고,
칠성판 목에 달고 바다로 물질을 나가 오직 자식 공부시키려는 일념으로 살아내신
우리네 어머니가 영원한 제주의 결이다.
이 결들을 천연염색 갈천에 옮겼다. 풋감으로 물들인 갈천에 사진을 걸어 물결로 형상화하였다.
감색은 땅의 색이며 물결치는 제주의 결은 살아 숨 쉰다.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다시 삶 속으로 들여와 커튼으로 사용된다.
제주의 결은 삶 속에 있다.
2026년 8월
고혜영
어쩌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
어쩌면, 보지 못했을 것들
여전히 꽃은 핀다.
그래도 꽃은 핀다.
그냥, 피고 진다.
내 삶과 관련된 무언가를 찍다.
내가 아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나는 다 알지 못하기에,
넓고 깊은숨을 찬찬히 내쉬며 틈바구니 사이로 뿌리를 내린다.
수수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날 때까지.
바람의 향기. 환상적인 낙엽. 사람 같은 억새.
바쁜 아침. 늦어서 허둥지둥 난리인데...
오늘은 주말이었다. 아무 일이 없는~ 행복한 엄마는 밖으로 나가 가을바람의 향기를 느낀다.
아들과 함께. 낙엽이 환상적으로 떨어지고 억새를 발견한 둘은 신나게 변신 놀이를 한다.
그러다 엄마는 문득, 아들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억새로 보여준다.
제주의 가을 억새 가족. 하나가 하나를 만나 둘이 되고 넷이 되다.
툭툭~~ 가을비가 내리고 빗소리에 취한다.
제주
나와 너
함께하는 우리
바쁜 현대인...
바쁘게 돌아가는 나는 멈추려 한다.
쉼이 있는 하루 하루
나를 한 아름 감싸주는 한라산
나를 바라봐주는 곶자왈
나를 숨 쉬게 만드는 바람
나를 알게 해주는 바당
나의 제주도를 만났다.
우리는 한울의 별이여
모든 바람을 거두리라.
인간을 구성하는 무거운 원소들은 먼 옛날 중성자 별이 부서진 것.
화산으로 분출된 용암은 이윽고 한라 사람에게 불굴인 정신으로 피어나니.
스러진 영혼들은 빛나는 별들로 다시 태어나고.
잊혀진 바람들을, 삿된 먼지들을 모두 거두리라.
우리는 한울의 별이여
모든 바람을 거두리라.
나는 4·3을 직접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현장탐방을 하며,
북촌 아기무덤을 찾아가 그때 상황을 경험했다.
4·3 평화공원에서 두어시간쯤 몰두하며 피부가 곤두서는 것을 느꼈고,
영화 '지슬'을 보면서 믿기지 않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화산도'가 우리 말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을 지새우며
제주의 구석구석을 쫓아다니면서 읽어냈다.
제주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제주의 곳곳을 묘사해내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작품을 만들며 나는 다시 '화산도'를 손에 들었다. 몇 장을 넘기며,
유채 꽃 한 땀을 떼고, 돌담 한 땀을 뜨다가 다시 몇 장을 읽었다.
직접 4·3의 아픔을 겪지 않은 나로서는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북촌의 아기 무덤들···
아기들의 넋이야 하늘(?)로 돌아가겠지만, 땅에 남은 어미의 가슴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내가 어미라면 온전히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 작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섬이 된 사람들… 섬사람
기억의 바람이 된 섬
섬에서 섬으로 돋아나는 섬
오늘도 섬이 되어 살아가는…
섬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제주의 아픈 이야기들을 어르신들에게 들으며 자랐지만
깊게 새기고 살지 못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내가 살아온 제주의 다른 이면들을
알게 되면서 분노와 투지를 불살라 내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4·3과 이재수의 난, 그리고 몽고의 지배 100년의 시간을 찾아 공부하면서
제주의 실체를 알아갔다.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제주 섬에 대한 발걸음으로
한라산과 부속 도서와 368개의 오름을 구석구석 다니며 지질과 식물 그리고
제주 삶을 알아갔다.
하나의 돌로 된 섬, 큰 덩어리로 이어져 해안선부터 백록담까지 산으로 이루어진
실체성을 갖춘 섬, 독특한 문화와 수많은 고초와 탄압 속에서도 끝내 살아낸
사람들 특성을 간직한 사람들의 섬, 설문대 할망의 이야기 속에서 바다, 바람,
신들의 고향으로 불리지만 정작 삼다의 섬이니 말들의 섬이니 불리며 왜곡된
관광지적 관념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깊은 속을 간직하지만 쉽게 드러내지 않고, 외부인에 대한 심한 경계는 과거의
경험에서 온 자기방어 본능이다. 하지만 섬사람들끼리는 깊은 결속력을 가진
끈끈함이 깊다. 오랜 세월 섬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사람이 섬인 줄
아는 이는 드물다. 섬은 나에게 섬사람이라는 인식 대신 섬 그 자체의 정체성을
부른다. 섬에서 태어난다는 일은 평생 섬이 되어 가는 일이다. 떠났어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본향당의 기억을 간직한 하나의 덩어리로 굳어가는 바위돌처럼
굳건한 결속력이다.
섬은 나로하여금 살라고 하고, 끝끝내 존뎌서 살아남으라 한다.
나는 그걸 표현하고 싶다. 섬이 되어가는 나의 모습 속에서 섬 이야기를 꺼내본다.
사각의 상자 안에 갇혀서 감추어진 이야기가 펼쳐진 내부에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다.
시를 적어 나의 섬을 드러낼 것이고, 제주의 돌과 나무 그리고 풀들로 오브제를
삼아 표현할 것이다. 섬 이야기를..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때 그 기억들이 바람이고 먼지가 되어 부서져도
어제 일처럼 살아온 섬
끝끝내 살아가는 동안에도
이 섬에 사는 가슴팍에
잘려나간 기억이 치유가 되겠냐?
새카맣게 태워진 마음이 지워지겠나?
모든 그리움이 지나가겠냐?
남겨진 삶이 행복하길 바랐던
떠나간 이들의 바램이 달려들어도
벗겨진 모자 뒤에서 당겨오는 알싸함
다시 주워 쓰면 그들을 불러낼 수 있을까?
빗줄기로 쓰다듬는 저 비석에
파도가 그리워 떨어지는 저 긴 벽 폭포 위에
케케하고 습한 동굴 입구를 막아선 철망에
선 사람들... 검게 그을려 우는 사람들....
설문대 할망은 뭐싸 해신디
작산 사람들 다 죽어나가도록
물장올에서 숨만 죽여신지
겁 먹어실테주 그 피바람난 시절에는
누겐 용기란 걸 가져심직 허냐게
심방 붙들엉 하루 운명을 점쳐실거라.
자연은 각각의 하나인 동시에 합쳐진 하나
순환하는 모습 : 빗방울 바다 돌 모래 흙 숲 풀
바람은 흔적을 남긴다.
섞이지 않지만 한데 모여 사는 삶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 흔적을 남기기에 덧없지 않는 삶
내 삶과 관련된 무언가를 찍다.
내가 아는 것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나는 다 알지 못하기에,
넓고 깊은숨을 찬찬히 내쉬며 틈바구니 사이로 뿌리를 내린다.
수수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날 때까지.
"제주에서의 나의 삶은 무엇일까?"
<달맞이 꽃> 제주에 처음 와서 낯선 바람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피어나는 달맞이 꽃을 보며 나를 만났다.
어디에 뿌리내릴지 몰랐던 마음이 제주의 바람과 빛에 조금씩 물들어…
마침내 제주가 풍경이 되어가는 시간.
그날의 나와 달맞이 꽃을 한 폭의 기억으로 담았다.
섬의 이방인으로 몸 붙인 땅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무치인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제주의 결을 말할 수 있을까
1948년 그날
해도 별도 달도 뜨지 않았다
바다는 침묵했고 피 흘렸다.
동백은 뭉툭뭉툭 스스로 목 베었다.
동백의 뜨거운 피는 집집마다 꽃 피운 기억으로 쓰러졌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날
그날 이후 마을은 사라졌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도 기억도 사람도 없는 동백의 피도.
텅 빈 기억의 바람만 검게 울고 있다
사라졌으나 火石되어 남아있는
無思惟의 잔혹함
검은 기억의 돌, 나무, 바람만이 빈 들판을 지키고 있다.
꿈속에서 작은 나비들 푸른 들판을 뛰어다닌다.
아이들이 왔다
숨박꼭질하던 아이들 지붕없는 안방에서 부엌에서 팽나무 뒤에서 뛰어나왔다
아이들이 뛰놀던 골목골목 웃음소리 피어나
이 땅의 소리 소리들. 봄의 빛깔들
집집마다 불빛 환한 밤 살아날 수 있기를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웃에 사회 공동체에 세계 곳곳에서
무사유로 인한 인권 탄압, 생명 경시, 국가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주 4·3의 아픔을 넘어 지구 곳곳의 4·3의 비명을 듣는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며.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세상을 품고 산다.
숲은 자라나며 무너지고, 태어나며 죽고, 그래도 살아간다.
숲은, 숨.
같은 길 위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풍경을 걷는다.
너의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숲은 숨, 혹은 삶.
자라나며 무너지고, 태어나며 죽고, 그래도 살아간다.
같은 숲속에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걷는 우리는
어쩌면 한 번도 같은 언어로 이야기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숲에 건네는 말들은 온전히 번역되지 않아
결국 우리는 각자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바람을, 누군가는 아픔을 읽는다.
나는 왜 우리 마을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가. 탐구라는 말조차도 거창하게
들리는데, 내가 하는 것은 일종의 '자파리'에 가깝다.
유년의 나는 마을이라는 행정 개념에 희박했고 당연히 사유지와 부동산의
의미도 몰랐다. 그저 애마였던 자전거를 타고 숲이건 밭이건 이웃집 지붕이건
내 발이 닿는 온 동네를 놀이동산처럼 쏘다녔다.
이 땅의 끝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어떤 길의 끝에는 막은 창(막다른 길)이 나오고,
또 어떤 길의 끝에는 부모님께서 미리 위험하다고 일러두었던 도로의 경계가
있었으니 그제야 뒷걸음 하는 것으로 이 유원지의 규모를 감각했다.
콜라페트병에 얼려놓은 물 한 병, 그것을 감싸둔 수건 하나, 튼튼한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떠나는 모험은 굉장했다. 숲길에는 고목의 괴물이, 촐밭에는
멧돼지를 닮은 괴물이, 농업용 물통에는 올챙이와 개구리를 닮은 괴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것은 상상이다. 나는 동네 친구의 컴퓨터에서 보았던 RPG
게임처럼 가상의 생명체를 무찌르고 성장하고 채집하고 재화를 얻어 돌아오는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1996년 출생의 내가 기억하는 초등 시절의 자파리다.
새로운 땅에서 남몰래 장엄한 결투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산딸기를 따 먹었던
기억. 마을 전체는 고사리손에 그리기가 어려워 집 앞 과수원 지도라도 만드려다
꾸벅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문득 나와 같은 마을에서 60년을 보낸
아버지의 어릴 적이 궁금했다.
아버지는 소를 몰다 지네를 잡아 아이스께끼로 바꾸어 먹었다. 매일같이하는
밭일이 너무 싫어 땡땡이도 쳤다. 아지트에서 동네 친구들과 만나 돼지 내장으로
공을 만들어 축구하거나, 4·3성담 위에서 니편 내편 나누어 전쟁 놀이를 했다.
가끔은 마을의 어느 공터에 천막이 생겼는데 묘기도 볼 수 있고 돈을 내면 천막
안에서 영화도 볼 수 있었단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가 처음이었고 새로웠다. 같은 땅에서 유년을 보냈지만
정말 다르구나. 그렇다면 더욱 먼 과거엔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을까.
일찍이 그들이 붙여두었던 땅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풍경과 생활, 그리고
전설을 유추할 수 있는 이름이 잊히고 사라지고 있었다. 마을의 옛 지명을
조사하는 일은 정말 흥미로웠다. 세화1리 청년회에서 2003년에 발간한 청년
30년사를 바탕으로 직접 현장을 다녀오기도 하고 위성지도와 웹 로드뷰를 통한
추적도 했다. 화첩에는 마을에서 조사한 옛 지명 88곳 중에서 22곳을 선정해
간략하게 기록했다. 2019년 쉼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요 옛 지명 표지석이
위치한 14곳과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느꼈던 8곳에 각각의 상상을 덧붙여
그렸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를 '자파리한다'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자파리'의
결과이자 '자파리' 기록의 초석이다.
*자파리 [명사] : 주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
*쉼-팡 [명사] : 지친 몸을 잠깐 쉴 수 있게 만든 대.
*촐 [명사] : 마소에게 먹이는 풀 따위.
출처: 제주어대사전